50일간 부관참시, 이제 노무현을 버리자고? 시대정신

'노무현의 덫'에 걸린 검찰과 <조선> <중앙>

지난 4월 1일 임채진 검찰총장은 대검 주례간부회의에서, "이번 수사가 이제까지 검찰에 대한 사회 일각의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총장이 국민과 역사 앞에 책임질 것이다"고 단언했다.

 임 총장은 이어 검찰 간부들에게,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배제하고, 또 외부적 요소에 어떠한 영향도 받지 말고 오직 법 원칙에만 충실한 독자적 판단에 따라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로부터 45일이 경과한 5월 5일 임 총장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그는, "검찰이 어떤 결정을 내더라도 승복하지 않는 쪽에서 공격과 비난을 벼르는 상황에서 과연 합리적이고 소신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이런 사회 분위기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자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꽁지 내리는 검찰과 <조선> <중앙>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지난 4월 30일 소환조사로 일단락된 것 같다. 권양숙 여사에 대한 소환조사가 남아 있다지만 수사보고서가 이미 검찰총장에게 올라갔으니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수사 초기 '국민과 역사'를 들먹이며 수사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던 임 총장은 왜 이렇게 자신감을 잃고 좌고우면하게 된 것일까?

 자신감을 잃은 것은 검찰만이 아닌 것 같다. 소리 높여 노무현을 단죄하자고 외치던 <조선>과 <중앙> 역시 요즘은 자기들이 한 말들을 주워 담기에 급급하다.

 <조선> 김대중 고문의 극적인 변화를 읽어 보자. 지난 3월 30일자 칼럼에서, "노씨 너무 까불어 지금 당하는 것"이라고 운을 뗀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었다.

 "야당은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한다. 전에 한나라당도 그런 말을 했다. 그러나 보복이라고 해도 좋다. 자를 것은 잘라야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는 손 못 대고 죽은 권력에나 칼을 댄다고 빈정대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응징할 것은 해야 한다."

이렇게 단호히 노무현을 응징하자고 했던 그가 수사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전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4월 27일자 칼럼에서, "기소하지도 말고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고 주장한다.

 <중앙>은 <중앙>대로 요즈음 '노무현 딜레마 해법은?'이라는 기획시론을 통해 연일 노무현을 '사법처리하지 말자'고 하거나, '하더라도 곧 사면하는 방법을 택하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의 논리는 궤변에 가깝다. <조선>의 김대중 고문은 '노무현을 빨리 잊기 위해서' 사법처리하지 말자고 하는가 하면,  <중앙>은 '노무현에게 긴 고통을 주기 위해'(박효종 교수) 또는 '이미 사망선고가 내려졌으니'(조국 교수) 기소하지 말자고 한다. '법에 따라 처리하고 사면으로 풀자'(김일영 교수)는 한참 앞서 나가는(?) 주장도 있다.

 이처럼 검찰이 자신감을 잃고, <조선>과 <중앙>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차로 법원의 영장심사가 걸려 있는 데다 영장이 통과되더라도 국민의 반발이 두려워진 것이다. 

 이것을 먼저 알기 시작한 것은 국민들이었다. 수사 초기만 해도 이른바 '노빠'들 외에는 노무현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많은 국민들이 시일이 흐르면서 노무현의 비리가 '별게 아니다'는 것을 깨우쳤으며 검찰의 수사가 편파적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국민들은 검찰이 연일 노 전 대통령의 피의 사실을 기묘하게 침소봉대하여 언론에 흘린다는 것을 눈치챘다. 검찰과 언론은(여기에는 진보언론도 포함된다) 박연차 회장의 진술을 과신했다. 아니면 너무 믿고 싶은 나머지 믿어 버리는 '의도적 오류' 같은 것을 범했다고나 할까.

 박 회장은 형사 피의자로 구속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는 검찰의 선처를 갈망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형사 피의자의 진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빈약한 증거력을 갖는지를 진작 헤아렸어야 한다.

 너무도 비합리적인 한국 검찰

 여기서 잠깐 한국의 검찰이 사람의 진술을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수용하는지를 알아보자.

 1)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은 고검장 신분으로 이학수 부회장 방으로 직접 와 휴가비를 받아가기도 했다."(김용철 변호사 삼성 떡값 관련 진술)

 2) "제가 (2000년) 1월에 비비케이라는 투자전문회사를 설립하고 이제 그 투자전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 사이버금융회사를 설립하고 있습니다."(이명박 대통령 광운대 동영상 진술)

 3) "나는 노 전 대통령을 보고 돈을 준 것입니다."(박연차 회장 검찰 진술)

 1)은 명예훼손에 의한 형사처벌 위험을 감수하면서 한 진술이다. 2)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한 진술이다. 그리고 3)은 구속 상태에서 검찰 수사관에게 한 진술이다. 그런데 검찰은 1)과 2)는 '사실이 아니다'는 결론을 흔쾌히 내린 반면, 유독 3)만 '사실'이라고 간주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3)은 노 대통령을 '보고 줬다'는 것이지 '노 대통령에게 줬다'는 것이 아니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기자들 앞에서 박연차 회장을 '박 검사'라고 호칭했다고 한다. 그는, "부인하던 정관계 인사들이 박 회장과 대질하면 대부분 혐의를 시인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검찰이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면서 박 회장의 진술에 얼마나 크게 의존했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준다.

나홀로 기발한 홍만표 수사기획관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서울로 이동 중이던 4월 30일 오전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의 대질심문이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처럼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검찰의 분위기잡기식 희망사항은 노 전 대통령 측의 노련한 대응에 의해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홍만표 수사기획관의 말에는 정말 뻔히 보이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원래 누명을 쓴 사람은 대질신문을 원하는 법입니다."

 이것은 노 전 대통령은 '누명을 쓴 사람'이 아니라 '혐의가 확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흘리는 말이다. 그는 여러 차례 기발한 방법으로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기정사실로 만들려고 애썼다. 문제는 이런 식의 기교적 발언을 기발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홍 기획관 한 명 정도라는 데에 있는지 모른다.

 "부인이 돈 받은 것을 노 전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고 아들이 돈 받은 것을 아버지가 몰랐을 리 없다. 이것은 상식의 틀이다."

 여기서부터 검찰의 무리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객관적 증거를 제시해야 할 수사관이 '상식의 틀' 따위나 운운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수사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니면 노 전 대통령이 형사처벌 받을 만한 짓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소환 이후에도 검찰은 계속 헛발질을 하고 있다. 검찰은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아들 건호씨가 출처불명의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을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보고 받은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사 검찰 말대로 보고 받았더라도 이것은 아들이 박연차 회장의 돈을 받은 사실을 노 전 대통령이 알았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또한 검찰은 '국정원이 미국에서 아들 건호씨의 집을 알아봤다는 것'을 흘렸다. 이것은 혐의의 본질과 무관한 사항이다. 또한 국정원이라면 대통령 가족의 집을 알아볼 수도 있는 법이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노트북이 아들 건호씨의 회사에 갔다 온 것을 가지고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여러 증거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런데 대관절 돈 받은 것과 노트북 갔다 온 것이 무슨 관련을 갖는다는 말인지? 

 임채진 검찰총장은 "노 전 대통령의 수사와 관련해 검찰 내부의 다양한 견해를 듣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일어난 다양한 의견 개진을 마치 검찰 내부의 혼란과 분열로 희화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불평했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검찰은 희화화된 지 오래다. '시녀' '주구' '떡찰' '견찰' 등은 어제 오늘 생긴 말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 검찰은 이번에도 예의 그 '검새스러움'을 여지없이 들키고 말았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전쟁과 사람>을 연재 중입니다.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anheej.egloos.com/tb/9674300 [도움말]

덧글

덧글 입력 영역